지금 생각해보니,
지난 시간들 동안, 나는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차이가 난 점이 있다면, 나의 본 성격과 첫인상 말고도 자존감이라는 것에 있다.
나는 나 스스로 자존감이 매우 낮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와 이별하면 방바닥을 뒹굴면서 아파했고 한달에 7kg가 빠지기도 하면서 엄청난 눈물을 쏟아내면서 정신을 못차렸다.
그럴 때 마다 난 나를 탔했고, 내가 질리는 여자라거나, 내가 못나서이거나 조금 더 착했다면, 조금 더 예뻤다면, 하고 원망했었다.
그런 과정이 나를 어느 정도는 소극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었지만
난 언제나 열정적인 사랑을 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어떤 일에도 '상처'는 덜 받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건 사장님의 말씀인데, 본인이 인정한 상처는, 받은 거라고 할 수 없는거란다. 본인이 정말 인정하지 못하는 게 상처라고 그러셨다. 그런면에 있어서는 나는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오래 고민했던 것 같다. 왜 그 사람이 그런 말을 내게 했을까. 그런 일이 내게 왜 아픔으로 다가오는 걸까. 그런 것들을.
그리고 그 상황을 충분히 위로받을 글들을 찾아헤매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열심히 치유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강신주 철학자가 겉으로 꺼낼 수 있는 상처는 이미 상처가 아니라는 말을 오늘 라디오에서 해줬는데, 생각해봤는데 나는 내 상처를 남들의 위로할 때 자주 써먹곤 한다. 그러면 그들은 마음을 좀 놓기도 한다. 그런 과정들로 나도 치유받곤 했던 것 같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직 나에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울적한 요즘.
나의 지난 역사들을 쭈욱 살펴보는 요 근래, 나는 참 열심히 살았다는 걸 인정하고 싶다.
부정하지말고 의기소침해하지말자.
본질적인 고민을 하던 원래의 나로.
201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