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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시민의 철학] 사소한 것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하다

by Olivia Ha 2013. 3. 29.

작년과 올해 니체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간혹 그의 책들을 언급할 일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책을 잡고 꼼꼼히 읽어본 것은 거의 십 년만인 것 같다. 역시 시간이 흘러서인가. 예전에 읽은 니체는 망치를 들고서 서양 철학의 근본 신념들을 박살 내던 전사, 그것도 매우 유쾌한 방식으로 춤을 추던 전사였는데, 이번에 만난 니체는-물론 장난기는 여전했지만-침착하고 차분하며 심지어 소박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때로는 인류의 최대 과제를 자신이 해결한 것처럼 말했지만 때로는 아무리 가난한 영혼이라도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싸구려 여관’이 되기를 자처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 없는 새처럼 잠시 날았던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헛된 명성을 얻지 않도록 모래밭에 남긴 제 발자국을 열심히 지우는 사람. 그것이 또 다른 니체였다. 


니체가 글을 쓰던 방 

당신이 떠받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신의 일상
지난달 십 대 친구들에게 니체에 대해 강연하면서 ‘신은 죽었다’는 말을 풀이할 일이 있었다. 니체에 대해 강연을 하다 보면 힘에의 의지(권력의지), 영원회귀, 위버멘쉬(초인) 등등이 뭐냐는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던지는 이들이 있다. 그다지 좋은 질문 방식은 아니지만, 니체와 관련해서 듣게 되는 그런 말들의 정체를 알고 싶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매번 상황에 따라 나의 답변은 달라진다. 
아무래도 최근에 떠올린 니체의 이미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이유에 대해서, 나는 우리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니체는 말년에 쓴 어느 책에서 자신이 신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 ‘신’은 생의 반대 개념이며 해롭고 유독한 개념입니다. ‘영혼’이나 ‘정신’, ‘불멸의 영혼’이라는 개념은 신체를 경멸하는 것이고 또 병들게 하지요. 그것은 생에서 중요한 많은 것들, 가령 영양, 주거, 정신적인 식사, 질병의 치료, 청결, 기후 등의 문제를 섬뜩할 정도로 경솔히 다룹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신’을 떠받들면서 정작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한다는 뜻이다(여기서 말하는 ‘신’은 종교적인 신일 수도 있지만,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어떤 성공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우리가 믿고 떠받드는 그 어떤 것도 ‘신’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음악을 듣는지, 어디가 아픈지, 위생은 어떤지, 기후는 어떤지. 이것들은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것들이다. 내 일상을 돌아볼 때 그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내 삶에 큰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떠받드는 어떤 것 때문에 그것들을 소홀히 한다. 추상적인 인류 평화보다 내가 요즘 듣는 음악이 내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철학이란 그것들을 다루고 가꾸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를 뒤집어 보면 당신은 많이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근거하고 있던 절대가치의 붕괴로 받아들여지면서 서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철학자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묻기 전에 진리를 추구하는 자신의 의지와 태도를 문제 삼게 되었고, 심리학자들은 무의식과 충동에 대한 니체의 분석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화가들은 화면에서 소실점이 갖는 패권성을 제거하고 원근법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으며, 음악들은 화성체계를 깨는 실험을 시작했다. 정말로 니체의 사상이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하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런 엄청난 스펙터클 속에 니체의 위대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니체의 위대함은 소박함에 있다.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일, 즉 연기를 피우고 소리를 내는 일을 니체는 ‘거짓 불개’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니체는 ‘모든 것들의 가치전환’이라는 표현을 종종 썼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반대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는 지혜로운 자는 저렴한 비용으로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비싸게 치는 것을 그는 별로 높이 보지 않고, 그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소홀히 하니,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도 귀중한 것들을 쉽게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니체를 공부하게 한 재밌는 책,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는 자신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소상하게 적었다. 그는 자신이 인류에게 전대미문의 위대한 과제를 선사했다고 자찬했고, <차라투스트라> 같은 책은 인류에게 전하는 ‘제5의 복음서’라고까지 떠벌렸다. 심지어 자기를 소개하며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가’ 같은 제목을 달기도 했다(나는 사실 이 제목들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니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소한 것을 눈여겨보자
그런데 눈여겨볼 대목은 니체가 ‘위대함’을 어디서 찾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자기의 혈통, 앓았던 병과 치유법,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을 자세히 적었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를 꼼꼼하게 적었다. 어떤 음식과 차를 언제 어떻게 먹었는지, 자신이 머물던 곳의 날씨와 풍토들, 자신이 읽은 책들과 독서법, 자신의 문체, 자신이 들은 음악에 대해 적었다. 그러고는 독자들을 향해 물었다. “왜 일반적으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하는 이 모든 사소한 사항들에 대해 내가 이야기를 했는지” 이유를 아느냐고. “위대한 과제를 제시할 운명을 가진” 내가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해서 손해를 보지는 않을까 생각하느냐고. 그러면서 이렇게 답했다. “이 사소한 사항들은 이제껏 중요하다고 받아들여졌던 것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여기서 바로 다시 배우는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런 게 바로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이고 ‘가치의 전환’이다. 따로 갈음하는 말없이, 니체의 마지막 말을 다시 한번 강조해두고 싶다. 여러분, “사소한 것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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