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처럼 이별에도 서툽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이고 두 사람만의 내밀한 영역을 공유하며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듯 굴었던 사람들이 이별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듯 잔인하고 파괴적으로 행동합니다. 그 가학성의 정도가 마치 사랑의 크기에 비례하는 듯 공격성을 정당화합니다. 지난 시간과 추억들을 폐허로 만든 후 다시는 돌아보지도, 연락하지도, 만나지도 않는 것을 이별의 완성이라고 여깁니다.
사랑의 개념에 오류가 있듯이 이별의 개념도 잘못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별이란, 사랑이란 이름으로 맺었던 특정인과의 특별한 관계를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거두어들이는 일에 불과합니다. 물론 업무적 계약 관계와는 달리 감정적 잔해들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상대를 동시에 파괴해야만 결판나는 일은 아닙니다.
애착의 감정을 박탈당한 사람이 겪는 다섯가지 감정 단계인 분노, 부정, 타협, 우울, 수용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그 과정을 의식적으로 이행하는 것, 그 고통의 의미를 인식하고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우선 명심할 점은 이별 통보를 받는다고 해서 존재 전체가 거절당하거나 존재 자체가 박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하나의 관계가 끝났을 뿐이며, 당신은 여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떠난 연인이 생애 전체를 책임지겠다고 해놓고 그 약속을 방기해버린 듯 좌절하지는 마시지 바랍니다.
둘째 어떤 이별이든 그것은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이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그가 떠났으며, 당신이 더 잘하면 그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유아기의 아기가 냉담한 엄마에 대해 가졌던 감정의 잔해입니다. 설사 당신이 잘못했더라도 갈등을 조절하고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시켜버린 것은 명백히 떠난 사람의 문제입니다. 아마도 그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줄 모르는 나약하고 불안한 사람이며, 배려나 책임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를 것입니다.
셋째, 애착을 박탈당하면 충격과 함께 분노가 솟구쳐 오릅니다. 그때 분노의 감정을 잘 조절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노에는 당면한 이별에서 느끼는 감정보다 생애 초기부터 내면에 축적되어온 모든 단절과 이별의 경험에 대한 감정이 더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억눌려있던 내면의 분노를 모두 꺼내 상대에게 퍼부으며 잔인하게 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직 이 관계에서만 느끼는 분노와 실망감만을 적대감 없이 상대에게 표현하도록 하세요
넷째, 이별에 잘 대처한다는 것은 이별 후에 맞게 되는 감정을 충분히 체험하고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아주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아무리 시간이 오래걸리더라도, 손쉬운 도피나 위안거리를 찾지 말고 그 감정들을 충분히 느껴보세요. 파괴적인 분노, 숨 쉬기 힘든 우울, 환상 속에 그를 살려두는 미련의 감정들과 직면하세요.
심지어 그가 벌써 다른 연인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패배감, 그가 다른 연인과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몰아가는 질투의 감정까지 낱낱이 체험해보시는 겁니다.
바로 그런 부정적 감정들이 자신의 내면에 오래 전부터 깃들어 있던 것이며, 그런 묵은 감정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현재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시면 좋습니다. 그 모든 애도의 과정을 잘 이행하면 묵은 상처가 치유되고 정서가 풍요로워진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다섯째, 그가 떠나더라도 좋은 것은 내면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별할 때 우리가 염려하는 것 중 하나는 다시는 사랑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이번 연애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죄다 소진해버렸거나, 떠난 연인이 사랑을 모두 거두어갔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마친 메마른 우물이 되어 사막 한가운데 방치된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억해두세요. 연인이 떠나더라도 모든 좋은 것은 여전히 우리의 내부에 있습니다. 생의 에너지로서 사랑의 역량, 고통으로부터의 회복력, 성장을 향한 잠재력... 그 모든 것이 이제부터 더욱 활발하게 발현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섯째, 그가 준 좋은 것들도 여전히 내부에 남아 있습니다. 그와 나누었던 아름다운 사랑, 풍요로운 기억, 황홀하거나 부드러운 감각, 기쁨과 충만함... 그 모든 것이 이미 내면화 되어 당신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와 동일시한 많은 가치와 미덕들은 이미 당신의 성격과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 사랑을 통해 정서의 사유지가 넓어지고, 정신의 키가 훌쩍 자라고, 심지어 외모도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당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믿기 어렵다면 동네 노인 회관에 들러보세요.그곳에서 포켓볼을 하거나 포크 댄스를 배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내밀하고도 수줍은 미소를 주고받는지 고나찰해보세요. 그분들의 사랑이 사춘기 소년소녀의 사랑보다 은밀하고 진지하다는 걸 목격하실 겁니다.
천둥치듯 이별을 통보받더라도, 번개처럼 연인이 떠나더라도 아무것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번 사랑을 통해 많은 것을 누렸고 큰 성장을 맛보았습니다. 사랑에서 이별가지, 그 모든 과정의 행복감과 불행감을 풀코스 정식으로 골고루 섭취하게 해준 연인에게 감사하고, 그의 행운을 빌어주세요.
그런 다음 한층 업그레이드 된 마음으로 새로운 사랑을 맞으시면 됩니다. 다음사랑은 더 충만하고 안정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