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애인이 있으면, 자신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친구를 만나면 온통 남자친구 이야기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끼리 만나면, 상대도 안부를 묻는 절차에 남자친구랑은 잘 만나고? 를 빼놓지 않는다.
처음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나도 그랬었다. 외롭고 기댈 데가 없으니까. 쉬는시간마다 전화하고 내 인생이 온통 그사람으로 가득찬 것 처럼. 끝나고나니 아무 것도 없더라.(물론 교훈은 많았다) 20대 초반에야 그렇게 지내보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여자애들한테 무슨 이야긴지 단박에 알아듣게 이야기하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 있잖아. 난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니 남자친구가 아니라.. "
전에 영어선생님님이 한국여자들은 자기 컨텐츠가 없다는 식으로 지적한 게 나한테 오래 남아있다. 취미가 없는 경우가 많고, 몇 시간을 혼자 떠들 수 있을만한 자신만의 관심사도 없고 그저 연예인 이야기나 TV프로그램 이야기나..하는 소모적인 이야기들.
그에 나도 얼마나 뜨끔뜨끔했는지 부끄러웠다. 요새는 여자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 같기도 하다만:)
나도 늘 남자친구 이야기하면서 여자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었고 아마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전보다 양은 훨씬 줄었다. 그렇다해도 나의 경우에는 사실 눈치없는 애인자랑 보다는 나에게 피와 살이 된 이야기들을 꺼내가며 위로해줄 때가 더 빈번하다.
어쨌든 나도 여자친구들을 만날 때 남자친구의 이야기로 안부를 묻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그녀에게 그녀의 삶이 '그'보다 더 중요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 우리가 함께할 오랜 추억사이에 있을 one of them일 수 있으므로, 즉 우리들의 훗날의 우정도 오래오래 곁에서 지켜주고 바라봐 줄 사람이 아닐 수 있으므로 굳이, + 너와 나만이 공유할 수 있는 컨텐츠에 방해받기 싫어서.
사실 소개팅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주는 건 솔직히 내게 너무 피곤한 일이지만, 내게 고민상담을 청하고 그에 내가 응답할 수 있어서 기쁜 적도 많다. 여자친구들끼리 자랑도 좀 하고 흉도 좀 보고 또 그러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전화로 애교 더 떨고 새삼 사랑하는 감정이 더 깊어지고 그러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바보같았던 나의 옛날에 대한 회상과 여자들과의 수다가 좀 더 즐거워졌으면 하는 바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