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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외롭다고 소문내는 일

by Olivia Ha 2013. 5. 15.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이 부럽다.

외롭다고 여기저기 누군가를 소개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헤프다고 생각했다.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 그 사람이 나보다 낫겠단 생각 들었다.

막상 이 사람 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닿고 그런 기회가 이상하게 끊이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주춤하고 한 발짝도 못나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와도, 기꺼이 열어줄 수 있는 용기가 내게는 없구나 싶다.


오늘 이 글을 보니 더더욱 이런 생각이.


임경선을 만난 건 2년 전 가을 무렵이다. 구김이 간 셔츠에 대충 쓸어 넘긴 머리카락, 화장기 없는 흰 얼굴의 임경선과 유명 칼럼니스트,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의 ‘캣우먼’ 임경선 사이에는 커다란 강이 흘렀다. 심지어 말문을 열자 강물이 더 불어났다. 그녀는 수줍은 얼굴로 너무 직설적인 이야기들을 건네왔다. 예컨대 ‘내가 왜 좋아?’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나라는 여자>에 대한 소감도 첫인상과 비슷하다. 다른 건 됐고 그냥 그녀의 솔직함에 항복하고 싶어진다. 그녀의 가장 큰 자산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자유를 스스로에게 준다는 것이다. 임경선의 신간 <나라는 여자>는, 과거를 길어 올려 자신의 상처와 결핍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그러나 상처와 결핍에 대해 떠드는 책 특유의 의미심장한 정신승리 같은 건 이 책에 없다. ‘상처란 애초부터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극복해야 할 어떤 것이라는 관점에는 이미 자기부정이 깔려 있으니까. 그럼 우린 어떻게 우리의 상처와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그녀가 자신의 상처와 결핍을 능동적으로 끌어안고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이제 그것을 무리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라 여긴다. ‘상처와 결핍이 사람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오히려 사람을 정직하고 선명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하는 그녀 덕분에 상처와 결핍을 흉이라 생각하며 움츠러들고 있던 우리가 다시 기지개를 켤 힘을 얻게 된다. 그녀가 말한다. ‘상처는 나뿐 아니라 타인의 정수를 이해하게 해주는 교차로 같은 것’이라고. 

PAPER 5월호 클립보드 / 한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