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당신의 바람을 엄마아빠를 통해 실현시키는 것 같은,
우리가 남들이 부러워할 모양새를 갖춘 삶을 꾸리기를 바라는 것이 결국 우리가 정말 잘 살기를 바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기도 하지 않느냐하는 할머니에 대한 불만을 내가 터뜨린 데서 출발했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뭐했다더라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할머니는 내심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네의 욕망대로 살아라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과 번듯함을 조금 더 바라시는 할머니 사이에서, 나는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서 조금 더 당연하게 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옳다는 답을 스스로 내려놓고,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랑 밤에 나란히 누워 둘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
사실 이런 마음이었다. 난 뭐든지 내 목소리를 우선시해주는 엄마가 내 옆에 있는데 나만한 시절, 나의 엄마는 뭔가 당위성을 부여한 엄마 밑에 있었다는 것에 조금 안타까운 마음.
그렇지만, 50년 차이가 나는 할머니와 내 세대의 사고방식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엄마가 그랬다. 그래도 살면서 난 절대 안그래 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엄마는 할머니도, 나도, 다 이해해주었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계속 안고갈 중요한 이야기는 이것. 어쨌든 내가 성질을 부린 덕에 삼대 모녀는 각자의 위치에서의 삶의 모습에 대해 조금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시월드라고 하는 방송에서 그런 코너가 있다. 시어머니랑 며느리가 손을 맞잡고 서로 서운한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하는데 서운한 점을 토로할 때 마다 '그럴 수 있어~'라는 말로 이해하는 노력을 하는 코너.
그래서 요즘 다짐을 했다.
어떻게 그래?
왜 저래?
도저히 이해가 안가
대신에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지도 몰라.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
아니면, 그냥 그런가보다 라도 할 수 있도록.
이거 진짜 잘 못하는데 이렇게 하려고 정말 정말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요즘 많이 하고 있다. 잘 안되겠지. 그래도 뱉어놓고나면 더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할테니까 뱉어본다.
Everyone has a story. Be willing to hear it before you ju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