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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의 역사

by Olivia Ha 2012. 7. 5.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시작된 건 오래 전부터다. 기원전 2000년 무렵 이집트에선 악어 배설물과 아교질, 꿀 등으로 만든 고약으로 피임을 했단다. 이런 물질들에 살정(殺精) 성분이 있다고 믿었다. 어떤 지역에선 독초나 나무뿌리, 해초 따위를 사용하기도 했다. 로마 군인들은 물고기 부레나 동물 창자를 손질해 만든 남성용 피임기구를 썼다. 요즘으로 치면 콘돔이다. 중국에서는 비단, 이집트에서는 리넨을 이용했다.

콘돔이란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다. 그중 17세기 영국 왕 찰스 2세 주치의 이름이 ‘콘돔’이었다는 설이 그럴 듯하다. 왕의 문란한 엽색행각으로 고귀한 혈통이 혼탁해질 것을 우려해 양의 창자로 피임기구를 만들어 바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 더들리 성터에서 1647년 만들어진 수제 콘돔이 발견됐다. 콘돔이 일반에 널리 보급된 건 19세기 후반 고무나무액을 암모니아로 농축해 안정화시키는 라텍스공정이 개발되면서다.

먹는 피임약은 1950년대에 등장했다. 그레고리 핀커스라는 미 생물학자가 호르몬을 합성, 토끼와 쥐의 배란 억제에 성공한 데 이어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의 도움으로 여성용 ‘알약’을 개발했다. 윤리적 논란과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피임약은 20세기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여성이 임신 여부를 선택해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1999년엔 ‘사후’ 72시간 안에 먹으면 피임률이 89%에 이른다는 응급피임약이 나왔다. ‘플랜B’라는 절묘한 이름이 붙은 이 약을 처방전 없이 팔아도 되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정치권, 의·약업계, 여성계, 종교계에서 지루하게 이어지던 논쟁은 2006년 미 식품의약국(FDA)이 18세 이상 남녀에게 처방전 없이 팔도록 허용하면서 끝났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등에서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식약청이 사후 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의약품재분류안을 내놓자 찬반 논란이 치열하다. 찬성론자들은 여성의 선택권이 존중돼야 하는 데다 ‘일’을 벌인 후 72시간 안에 의사 처방을 받는 게 너무 번거로운 만큼 ‘무처방’이 옳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쪽에선 의학적으로 낙태와 다를 바 없고 성 문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마당에 피임약 논란이라니 아이러니다. 어떻든 식약청은 오는 15일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들은 뒤 내달 중 최종 확정한단다. 약사회 산부인과학회 등 관련 단체에 휘둘리지 말고 국민 건강을 감안해 편견 없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