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까지 일하다가 3시 반에 일어나 양재 꽃시장에 다녀왔다. 꽃으로 가득찬 이 곳에서 새벽 찬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콧 속 가득 퍼지는 꽃냄새에 기분이 좋았다. 매주 토요일 로테르담 시내에서 열리던 장날에 단돈 2유로에 히아신스를 한아름 품에 안고 오던 시간들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엄마한테 줄 작약, 라넌큘러스 그리고 히아신스를 샀다. 여기서 사도 비쌌다. 그래도 박스채로 차곡차곡 가지런히 쌓여있는 꽃들과 이 새벽부터 무덤덤하게 꽃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흥정을 하지는 않고 황토색 지폐를 건냈다.
돌아오는 길에 뼈해장국을 먹었다. 술을 마시고 해장하러 온 커플이 내 뒤에 앉았는데 여자가 "아 나 너무 많이 마셨어, 어떡해..."하면서 "아줌마 해장국 두개랑 처음처럼이요" 하고 남자가 묻지도 않은 술 한병을 더 시켰다. 그리곤 한그릇 먹는 내내 속보이는 flirting이 두사람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벌써 동이 터가는 걸 아쉬워 하는 마음이 다분히도 느껴졌다. 웃음이 났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니가 좋다' 라는 말을 못해서 저렇게 남이 들으면 투명하게 다 비칠 쿨내나는 척을 했겠구나 싶어서.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아줌마를 보며 '그래..힘드시겠다. 24시간 가게를 꼭 해야하는 걸까 그래도 손해가 아니니까 하는 거겠지 ? 아무리 그래도.. '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산 할 때쯤에야 두꺼운 외투로 꽁꽁 싸맨 날 향해 수줍게 웃으시면서 밖에 추워요? 물으셨다. 순간 그 미소가 너무 화사하고 예뻐서 나의 하루가 기분 좋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른 출근으로 오피스텔을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꽃을 한아름 안고 돌아오는 일은 확실히 좋았다. 이런 다감한 내 하루의 시작을 고백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