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라스베가스>, 보셨다고 했조?
"어떠셨어요?"
"한마디로 가증스러웠어요"
"지식인 남성들이 그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많이 운다고 하더군요. 영화에 그려진 남성의 절망, 남성의 중압감에 공감하게 된다구요. 남성들은 특히 그 장면에서 눈물을 쏟는다죠. 알코홀릭으로 죽어가는 연인에게 술병을 선물하는 대목. 하지만 일상의 중압감이야 남성들만 느끼는 게 아니죠. 남성의 절망과 중압감을 그린 영화가 처음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다른 의심을 해요. 남성들이 유독 <리빙 라스베가스>를 보며 감동으로 눈물짓는 이유에 대해서. 그건 주인공 여성 때문이라는거죠."
"주인공 여성의 캐릭터가 곧 모든 남성들이 꿈꾸는 이상형이라는 거에요. 어머니이면서 또한 창녀인 여성. 그녀는 사랑의 이름으로 남자를 구속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사랑에 대한 반대급부의 보상을 요구하지 않죠. 오직 헌신하고 복종하고 자신을 바칠 뿐이죠. 그 영화의 나쁜 점은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형, 그러나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여성을 창조했놓고, 그런 여성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공공연하게 유포한다는 데 있어요."
"그게 뭐가 나쁘죠? 그토록 지극하고 헌신적이고 증여하는 사랑을 기대하는건 여성도 마찬가지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여성이 더하죠. 또 그 정도의 환상은 덧칠해야 영화나 소설의 사랑 이야기가 먹혀들지 않겠어요?"
"맞아요. 그건 모든 인간이 사랑에 대해 거는 기대이고, 예술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복제해내는 호소력 있는 주제이고, 제비들이 거듭 사모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아킬레스건이잖아요."
"알아요.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을 정확하게 읽고 그것에 치밀하게 부응한 할리우드 방식이 우선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런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린다는 남성들이 어처구니없었구요. 제가 특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여성이 자신의 전 존재를 던져 사랑으로 투신할 때 그것이 왜 창녀의 방법인가 하는거죠. 여성의 몰락은 왜 성의 파괴를 통해서만 설명되죠?"
"혹시, 여성들 중에도 그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그런 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혹시...... 사람들이 그 영화에서 감동받는 대목은 불능에 대한 공감 아닐까요? 성 불능이나 사랑 불능은 많은 현대인들이 절망적으로, 그러나 내밀하게 자각하고 있는 드물지 않은 현상 같던데요."
"사랑의 감정은 삼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성은 너무 흔하거나 너무 억압되어 고유한 떨림을 잃은 지 오래죠. 남성들은 보다 강하고 오래가는 성을 향유하기 위해 감각을 마비시키는 연고까지 사용한다죠? 그런 행위는 자발적으로 삶 전체를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의미처럼 들려요. 성 불능과 사랑 불능이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불능으로까지 전이된 상태, 개인적으로 저는 그 영화를 그렇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