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더위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이 1,000명이 넘었다는 폭염 속에서도
호기롭게 등산을 하고 왔다.
삼악산은 오르기에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는데,
너무 험해서 네 발로 기어야만 했다.
아무런 잡념없이 그저 눈 앞에 보이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하는 이런 코스를 좋아한다.
이렇게 온 몸을 다 쓰는 운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용산에서 8시 itx를 타고 강촌역에 내려
10시가 좀 안되어 산을 올랐는데, 내려오니 거의 1시반 정도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내려와 폭포의 차가운 물에서 발도 담그고
항상 그렇지만 오르는 순간에는 온갖 후회와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내려오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거기다,
온 몸을 적실만큼 흐르는 땀을 쉼없이 닦아내고
포기할 뻔한 순간들을 이겨내고 난 후 먹는 춘천닭갈비의 맛이란...!
중간중간 각자가 싸온 '행동식'이라는 것을 나눠먹었는데
속이 너무 꽉 차면 오르고 내리는 게 부담스러워 잘 안먹다보니너무 배가 고팠다.
얼마나 고팠냐면, 닭갈비 사진을 찍는 것도 잊을 만큼.
올초, 우리가 흔히 먹는 닭갈비가 아닌
숯불 닭갈비라는 것을 춘천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그 이후로 세번째다.
역시 맛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나서 30대 언니오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대출신 여자와 공대출신 여자의 차이
소개팅을 임할때의 20대와 30대 남자의 태도 차이 등등
등산모임에 가면, 나는 거의 막내인데
처음에 등산모임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 (싱글) 30대 중후반이 등산을 즐기는 지 몰랐다.
벌써부터 산 좋아하면 문제 있는건데....라고 했지만,
쨌든 내 주변을 돌아보면, 등산으로 묶이지 않더라도
또래보다는 삼십대 중후반과 더 자주 어울리니까 뭐 낯설지는 않다.
그래서 나도 30대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경험담을 조금씩 늘어놓으며 내용을 보탰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다시 한 번 맞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원기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나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는데,
그럴 때마다 중요하게 보는 것은 바로 이 원기다.
원기란? 마음과 몸의 활동력
나이가 들어도 '원기'가 가득찬 사람.본인이 이미 경험해본 것이라도,
본인의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상대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호기심을 보여주는 일.
스스로 위로할 줄 알고 무기력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늘 생기와 행복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 그런 사람을 기다려야지!
이런 열띤 이야기 끝에,
역시 등산의 2차는 국물이지.
이런 국물을 원기있는 사람과 함께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삼각지 원대구탕에서 쏘주 한 잔 하며 긴 일요일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