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닥
- 문태준
-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 떨어지는 가랑잎이
-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 그대가 나에게
- 몸이 몸을 만질 때
-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 가랑잎이 지는데
-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