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에 가기 위해서 종로 2가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시장을 목전에 두고 횡단보도 하나를 만났고 유난히 길었던 신호 대기시간 동안에 나눈 대화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횡단보도에 화살표가 있다는 걸.
스페인에서 온 친구는 화살표가 있는 방향에 맞춰 걸어야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아. 그렇네, 이 화살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라는 다소 창피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답을 끝내자마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고 그야말로.. 내 대답을 증명하기라도 하는듯, 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마구 섞여서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어깨빵이라는 개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테지.
오늘 새로 배운 단어는 #mayhem 이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생각을 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어 어떻게 해야 모두가 다 효율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본인만 가장 빠르게 하려고 해, 로 시작한 대화는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mayhem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한국말로는 아수라장이다. 비단 길거리상황 뿐만이 아니라, 엘레베이터나 쇼핑몰 문을 통과할 때도 mayhem은 쉽게 볼 수 있다. aussie 들도 하는 말인데, 한국사람들은 문을 안 잡아 준다고, 원래 앞 사람이 문을 잡아주면 그 뒷사람이 이어서 잡아주고 그렇게 꼬리를 물면서 다 쉽게 문을 통과하는건데 여기서 문을 잡아주다가 바통터치를 못해서 열 명이 넘는 사람을 그냥 보내기도 해봤다고..
우리는 예의바른 민족이라고 칭하지만, '존댓말'이 있는 것 외에 '행동'으로 보여주는 예의는 부족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인생에 대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쉽게 이야기하지만 정말 다른 사람에 대해 respect를 품고, 그걸 보이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