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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옷 이정록

by Olivia Ha 201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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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영에게
  /이정록
 
집을 뛰쳐나온 열세 살 때
그는 시다였다 양복점 조수였다
재단대에서 꼽추 잠을 잤다
그렇게나 입고 싶어던 교복과
교련복에 단추를 달았다
피기도 전에 구겨진 청춘에 다림질했다
그가 재단하고 남긴 자투리 종이에
나는 수학 문제를 풀고 시를 쓰고 연애편지를 썼다
가위질 된 종이에는 초크 자국과
연필 자국이 선명했다 간혹 핏방울도 찍혀 있었다
그 초크 자국과 연필 선이 모여
사람의 길이 되리라 악수를 건넸던가
치수를 재던 대나무 자가 가로등으로 서리라
그의 어둠과 그늘을 믿었던가
어린 가슴에 심어뒀던 살얼음의 꿈들을
성냥불처럼 조마조마 지켜온 나날들
그 옛날 야근하며 꿰맸던 옷들이
지금은 낡고 해져 버림받았다고 해도
그 옷들이 땀으로 범벅이 되며
세상을 세웠다고 믿는다, 그는
골무처럼 아픈 손끝을 믿는다
옷은 제 상처로 사람을 철들게 한다
한 땀 한 땀 옷을 꿰매던 사람
누더기 많은 어둔 세상에
등 하나 내다 건다(그의 나이 마흔세 살, 오늘은
그가 장애인 후원회장으로 취임하는 날이다)
불꽃은 작고 바람은 차다
그의 손 곁으로 수많은 손들이 다가와
더불어 작은 불빛을 감싸 안는다
그러자 불꽃 심지가 허공에다 쓴다
세상의 하느님은 언제나
시다다 조수다 기레빠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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