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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타진

by Olivia Ha 2017. 8. 1.

유럽에서 돌아온지 5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아직 타진을 먹는다.

유럽에서 이것저것 눈 돌아가게 했던 물건들은 많았지만, - 사실 거의 다 식료품이었던듯..

스페인에서 본 그 싸고 맛있어 보이는 엄청난 요리 재료들을 보면서 진짜 거의 눈물이 날 뻔 했다.- '쇼핑' 하러 온 여행이 아니었기에, 

내가 가진 선택권은 그닥 많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써서 산 물건들에는 거의 후회가 없다.

그 중에서도 내가 아주 잘한 소비는, 타진이었다.

우리 돈으로는 단 돈 2,000원이었던 그 타진.

내가 무작정 그 외딴 마을로, 마을 전체에 나 혼자만이 아시안이었던 그 곳으로 가지 않았다면,

그냥 블로그나 기웃거리면서 쉬운 곳으로만 다녔다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그 많은 것들.

이제는 진짜 내 것이 되어버린 것들.


타진은, 모로코의 전통 찜요리의 이름이자 그 냄비 이름 자체이기도 하다.

한국말로는 저수분 요리라고 불리는 이 타진은 뭐든 내가 넣고 싶은 걸 넣기만 하면 된다.

단, 마늘, 토마토와 양파, 고수잎은 필수. 거기다가, 직접 시장에서 샀던 여러가지의 향신료들.

그 향신료를 다 먹기도 전에, 아마 다시 가서 그 향신료들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타진은 미리 할 수 없는 요리다. 

모든 재료를 잘게 자르고 예쁘게 배열해서 시간을 들여 만드는 요리다.

그래서, 타진은 그냥 맛있기만, 건강하기만 한 요리가 아니다. 

재료를 공수하는 노력이 들고,  정성이 들고, 시간이 들고 그 시간과 노력이 나를 경건하게 한다.

그 때의 나로, 더할 나위없는 이방인이 되었던 그 찬란한 시간으로 나를 되돌려 놓는다.

어느 날은 양고기로, 어느 날은 생선으로 어떤 날은 소고기로 내게 타진을 해주던 그 사람의 그 따뜻함까지 다시 느끼도록.


타진을 요리하는 동안 나는 다시 그 때의 그 무모한 나로 돌아간다.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고,

새로운 사람 틈에서 그 동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소속감을 느꼈던 그 때로.


그립고, 그래서 다시 꼭 돌아가고야 말 그 때로.